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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윤리

분배적 정의에 대한 회의론과 그 극복

by urusai 2025. 1. 12.

카우프만은 분배적 정의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공박하면서 전통적으로 제시되어 온 정의의 다양한 기준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후 그러한 분배적 정의의 공식들이 대체로 순환론적이거나 공허한 것이며, 아니면 지나치게 일반적이고 추상적이며, 나아가서 그들 간에 상충이 불가피하 다는 결론을 내린다. 더욱이 다양한 기준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아래 무수한 하위 기준들이 있어 실제로 그러한 기준이나 하 위 기준들 간의 상충을 제거해서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그의 주요 논점은, 구체적 상황에 있어서의 정의에 대한 결정은 고려되어야 할 지극히 복잡한 변수들로 인해 서 전통적 이론들 중 어떤 것도 그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분배적 정의는 해결 불가능한 문제로서 보다 바람직한 철학은 탐구의 방향을 다른 문제로 돌리 는 것이 보다 생산적일 것이라고 지적한다. 레셔 ( N. Rescher ) 도 이와 유사한 문맥에서 분배적 정의에 대 한 전통적 기준들을 평등, 필요, 능력 및 업적, 노력, 생산성, 사회적 효용, 주요와 공급 등으로 나누어 비판적으로 검토한 후 그들이 공유하는 동일한 결함은 정의가 요구하는 다른 모든 요구 사항 ( claims )을 배제한 채 단일하고 동질적인 한 가지 기준으로 정의의 문제를 환원시키고자 하는 일원론적인 ( monistic ) 점에 있다고 하였다.

 

특정한 하나의 요구만을 절대적인 단일 기준으로 내세움으로써 다른 모든 기준들은 무시되고 있으며 그 결과 각 기준들은 모두가 과도한 배타성이라는 귀족주의적 과오 ( aristo cratic fault of hyperexclusiveness )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 다. 그런데 전통적 정의론에 대한 회의주의적 결론을 도출하면 서도 레셔는 카우프만과는 달리 정의의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서 이러한 회의를 극복할 수 있는 나름의 방도를 제시하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전통적 정의론의 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일원론적이고 동질적인 정의관에서 다원론적이고 ( pluralistic ) 이질적인 정의관에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분배적 정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제 요구의 규준 ( canon of claims )이라 칭하고 분배적 정의는 각자를 그의 합당한 요구들 에 따라 처우하는 것이라 했다.

 

따라서 그와 같은 규준이 지게 되는 부담은 합당한 요구들의 성격을 규명하고 그 요구들 간의 상 충을 해소하고 상호 조정하는 계산법을 제시하는 일이라고 한다. 제 요구의 규준이란 전통적인 기준들이 갖는 과도한 제한성의 결 함을 피하여 다른 모든 기준들을 포괄하고 각 기준들이 갖는 저마다의 정당성을 인정함으로써 정의의 여건들을 고려, 구체적인 현실의 제 요구를 조정, 통합하는 것이 분배적 정의의 기본 요소 라 본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는 어떤 분배적 정의론이든 그 이론의 현실적 적용에. 있어서 봉착하게 될 불가피한 난점이 있게 마련인데 이는 정의론 그 자체의 난점은 아니며 인간의 도덕적 현실이 갖는 복잡성을 반영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카우프만의 회의주의는 레셔의 처방에 의해 치유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원적 제 요구 간의 상충을 해소하고 그들을 상호 조정하려는 시도는 설사 어떤 계산법이 제시된다 할지라도 그 요구들 간의 비중을 대비, 환산함에 있어서 결국 모종의 직관에의 의존이 불가피한 이상 레셔는 카우프만의 회의론을 일종의 직관주의적 방식으로 무마시키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자 명성 ( self - evidence )에 근거한 전통적 직관주의 ( intuitionism ) 와는 달리 여기에서 논급한 직관주의란 도덕의 최종적 기준이 적 어도 두 개 이상 존재한다는 일종의 윤리학적 다원주의 ( ethical pluralism ) 로서 이들 기준들 간의 상충은 결국 직관에 의해 해소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다양한 요구들 간의 양적 통산을 가 능하게 하는 계산법이 제시되지 못한 채 지극히 주관적이고 임의 적인 직관의 조정에 호소할 수밖에 없을 경우 카우프만의 회의주의가 다시 고개를 내밀 여지가 마련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이러 한 회의주의의 극복을 위한 또 하나의 활로를 타진하 기 위해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중요한 한 가지 시도는 정의로 운 결과 ( just result )와 정의로운 과정 혹은 공정한 절차 ( just procedure ) 간의 구분에 근거를 둔 것이다. 절차도 정의롭고 결과도 동시에 정의로울 수 있다면 더없이 바람직할 것이나 우리 의 구체적 상황은 하나를 위해 다른 것의 희생이 불가피한 경우 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분배적 정의에 있어 정 의로운 결과, 즉 가난한 이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 주기 위 해서 부자에게 원하지 않는 과도한 세금을 징수하는 부당한 절차 가 시행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형사상의 정의 ( criminal justice )에 있어서와 같이 재판관은 공정한 절차를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되지만 재판의 결과는 무고한 자가 처벌되거나 죄인이 방면되는 부정의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의에 대한 논의에 있어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가 정 의로운 절차, 혹은 정의로운 결과 중 어느 것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그것은 모든 경우에 있어서 정의로운 결과를 보장할 기준이 제시되기 어렵다는 주장과 관련될 경우 중요한 의의가 있다. 물론 정의로운 결과와 정의 로운 절차를 갖는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며 정의로운 결과에 이르기 위해서 최선의 절차를 구상하는 일도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정의의 문제에 있어 그러한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은 이미 앞장에서 살핀 바와 같다. 정의에 대한 최근의 새로운 연구는 이러한 접근 방식에 암암리에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 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자유지상주의자 ( libertarian )로 알려진 R. 노직과 자유주의적 평등 ( liberal equality )을 내세우는 J. 롤즈는 정의가 절차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가장 잘 이해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이 양자의 정의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가는 가운데 새로운 가능성을 점검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