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그송의 개방사회의 이념 개방사회라는 개념을 영미 언어권에 도입해서 널리 유포시킨 사람은 오스트리아 철학자 포퍼이지만, 이 개념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 ( Henri Bergson )이었다. 베르그 송에게 있어서 개방사회란 인간 공동체의 발전에 있어 하나의 모 형으로 제시되었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문명화된 공동체는 그것 이 제아무리 자연에 의해 일차적으로 우리들에게 운명 지워진 사 회와 다르다 할지라도 실로 그와 같은 본능적으로 형성되었던 소 규모의 군거사회 ( 群居社會 )와 근본적인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 규모에 있어서만 차이가 있을 뿐 원시사회와 문명사 회는 모두가 자연적 조건들에 바탕을 둔 억압의 도덕을 통해 이 루어진 닫힌 사회라고 한다. 그는 대규모의 현대사회에 있어서 도 문명의 온갖 물질적 저장과 정신적 성과가 사라진다면 원시적 본능이 금방이라도 살아나 과거의 군거사회를 그대로 재현할 것으로 본다. 결국 규모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모든 폐쇄사회에 공 통되는 본질은 그것이 특정한 일부의 개인들만으로 구성되며 여 타의 다른 개인들은 그로부터 배제한다는 점이라고 한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현금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현실 정치는 폐쇄사회의 전제들에 의거해서 행해져 왔다는 것이다.
어떻든 간에 지금까지 과거의 모든 정치는 결국 전쟁을 겨냥 한 정치였다. 전시에는 살인, 약탈, 배반, 기만, 거짓말까지도 합법적일 뿐만 아니라 찬양받을 만한 것이 된다. 지금까지는 평 화조차도 전쟁 방지나 또는 전쟁을 위한 공격의 준비였다. 우리 들의 사회적 의무는 사회적 결합을 목표로 하는데, 이는 결국 우리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적과의 대치상태에서의 훈련의 태 세를 형성하게 된다. 이는 사회가 아무리 문명으로 장식된다 해도 그 바로 아래에는 원시적 본능을 숨기고 있음을 뜻한다. 우리 의 사회적 의무의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사회적 본능은 폐쇄사회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전쟁이라는 현상은 우리의 정치사회가 폐쇄 사회의 본질적 특성을 소지하고 있으며, 이성이나 문화의 힘만으로는 사회가 진정으로 개방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명백한 증거라는 것이다. 국가의 안보나 민족의 이해라는 명분은 집단적인 자기 보존 본능의 합리화이며, 아무리 보편적 정의의 이념을 함의한다 할지라도 법률과 헌법은 사실상 폐쇄사회의 법적 체계를 제공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베르그 송이 전쟁의 기원을 인간 공동체의 구조에로, 나아가 재산 제도 에로까지 추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베르그송은 " 전쟁의 기원은 개인적이든 집단적이 든 간에 소유권에 있으며, 인간이 그 본성상 소유를 추구하게끔 운명 지워져 있다면 전쟁이란 자연스러운 것이 다"라고 한다. 또한 그는 전쟁의 본능이란 실상 더없이 끈질긴 것인 까닭에 " 문명의 표피를 헤집고 자연을 탐색해 가노라면 가 장 먼저 나타나는 것이 바로 그 본능이 아닌가 한다"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베르그송은 전쟁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요, 그런 의미에 서 피하기 어려운 것이긴 하나 극복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베 르그송에 따르면 진화의 도상에는 불가피한 역사 법칙이나 거역할 수 없는 필연성, 혹은 역사의 숙명 같은 것을 지지하는 증거 가 없다는 것이다. 진화는 다양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사회의 진화에서 가려낼 수 있는 유일한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진보가 상극적인 두 경향 간의 소요에서 결과한다는 것이라 한다. 여하튼 전쟁을 극복하고 그럼으로써 정치 공동체의 개방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충족되어야 할 기본 조건은 재산 극대화를 지향하는 윤리의 제한 내지 포기라고 본다.
결국 베르그송이 요청하는 것은 벤담류의 공리주의에 기초한 자유주의의 종언이요, 맥퍼슨의 이른바 소유적 개인주의의 파기이다. 그가 생각하기로는 민주주의적 개방성은 재산의 극대화를 통해서가 아니고 산랑에 의해 동기화된 인간 존중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 도 더없이 중요하나, 그는 특히 박애의 정치적 함의를 보다 앞세우고자 한다. 베르그송은 폐쇄사회와 개방사회 간의 차이가 정도의 차이가 아 니라 전적으로 다른 종류의 사회 간의 차이임을 강조한다. 가족이나 국가의 범위를 인류에로 단지 확장만 한다고 해서 개방사회의 개념에 이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인간 존재에 대한 보다 새로운 통찰과 질적으로 상이한 경험이라고 한다. 우 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는 양적으로 가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인간 공동체만이 진정한 의미의 개방사회일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인류에 대한 사랑에 기초한 개방사회에로 가는 길은 자기 보존에 의 원시적인 자연적 본능이나 군거집단의 성원들 간의 유대로부터 곧바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종교나 철학을 통한 우회를 거쳐 전개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종교는 신을 통해서 인간으로 하여금 인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며, 또한 철학은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갖는 이성을 통해서 모든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을 알게 하기 때 문이다.
어떤 경우에서나 가족과 국가의 단계를 확장한다고 해 서 인류애에 도달할 수는 없으며, 단적으로 그러한 것들을 과감 히 초월함으로써만 진정한 인류애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논의를 통해서 베르그송은 정신의 눈이 열려가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다. 철학과 계시는 역사에서 열린 도덕과 열린 사회의 두 가지 원천으로 파악되고 있다. 나아가서 이러한 종교적 차원과 철학적 지평의 열림을 역사의 연속성을 깨는 불연 속적인 비약으로 본다. 이러한 비약은 예측되기 어려운 것이다. 도덕적 영웅들이나 성인들과 같은 예외적인 인간들은 개방사회와 개방도덕의 비전을 역사 속에 도입한 사람들이다.
기독교의 성인 들에 앞서 인류는 희랍의 성자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 불교의 아라한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한다. 도시국가의 닫힌 도덕이나 억압의 도덕과는 달리 전 인류에로의 열린 도덕은 모범적인 이들의 삶 속에 구체적인 모습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베르그송은 개방성을 인류애의 강도로 규정한다. 그것은 모든 인간을 용납하고 일깨우는 사랑이다. 나아가서 개방성은 인류애에 그치지 않고, 그 사랑이 동물, 식물, 나아가서는 모든 자연에 까지 이르게 된다. 가족이나 민족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사랑의 범위가 확대되어 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전자의 감정과 후자의 감정 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가족이나 민족 혹은 국가에 대한 사랑은 사랑의 대상에서의 선별과 선택을 내포하며 일부의 사람만을 포용할 뿐 다른 일부의 사람을 배제하게 되며, 따라서 그러한 사랑은 한편으로 증오를 동반하게 된다. 그러나 열린 정신에서의 사랑은 특정 대상에 끌리거나 특정 대상만을 겨냥하지 않으며, 따라서 인류애는 인류 전체를 지향하게 된다. 정치이론에서 베르그송의 위대한 공헌은 정태적인 폐쇄사회와 동태적인 개방사회를 인간 공동체의 발전에서 서로 대비되는 두 가지 범형으로 제시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두 유형의 사회는 인간 행위의 전 영역에서 이념상의 한계 개념으로 기능한다.
설사 완전한 열린 사회가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수 없다 할지라도 그것은 이상적인 한계 개념으로서 인간에게 열망과 지향의 표적 노릇을 하게 된다. 그리고 베르그송은 열린 사회를 향한 인간들 의 노력의 현실적인 정치적 표현으로서 민주주의에 대해 언급하 고 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정치체제 중에서 민주주의는 자연의 굴레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며, 닫힌 사회의 조건들을 넘어서고 있는 유일한 체제이다. 베르그송에게서 민주주의는 단지 선거를 통해서 성립하는 체제 이상의 것이며, 도덕적 근거 ( moral foundation ) 즉 열린 사회의 이념적 기초에 바탕을 둔 것이다. 베르그송은 자신의 저서 「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 마지막 구절에서 인간은 자유로이 자신의 문명을 만들어나가고 이 지구를 인 간 정신이 깃들만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재천명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인류는 그가 이룩한 진보에 반쯤 짓눌려 신음하고 있다. 인간은 그의 미래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할 일은 무엇보다도 계속 우리의 삶을 지속해 나갈 것 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현대의 정치적 상황은 닫힌 사회에서 열린 사회에 로 나아가는 도상의 어딘가에 존재한다. 그러나 개방사회에로의 길은 좁고도 험한 것이며, 폐쇄사회에로의 유혹은 끈질기게 개방 사회에로의 길을 막고 있다. 하지만 베르그송은 언젠가 개방사회 가 실현될 날이 오리라는 기대와 소망과 신념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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