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윤리

포퍼에 있어서의 폐쇄사회와 개방사회

by urusai 2025. 1. 12.

나치즘과 파시즘이 득세하던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철 학자 포퍼 ( K. Popper )는 「 개방사회와 그 적들 」이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그는 우리 당대와 후대를 위해서 다시는 전체주의적 위협이 재발되지 말기를 바라는 깊은 인도주의적 염원에서 그 책을 썼으며, 플라톤과 헤겔, 그리고 마르크스를 개방사회의 중요한 적들로 공격하고 있다. 그는 이미 베르그송이 개방사회와 폐쇄사회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았고, 이것이 유사성이 있음도 인정했다.

 

그러나 베르그송의 철학관과의 차이에서 유래하는 바 근본적인 차이를 지적하면서 베르그송의 구분이 지극히 종교적인 구분인데 비해 자신의 구분은 합리주의적이고 이성주의적인 구분이라고 했다. ( 폐쇄사회는 마술이나 주술에 대한 믿음으로 규정되는 데 비해 개방사회는 그러한 신비적 요소들을 비관하고 인간 자신의 지성과 합리적 논의를 권위로 해서 의사결정을 행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포퍼가 지적한 이러한 차이 이외에도 베르그송과 포퍼 사이에는 보다 중대한 하나의 차이가 있다. 그것은 바로 무엇을 향한 재방성이냐의 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포퍼의 개방성은 수평적 개방성 ( horizontal openness )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시행착오라는 실험적 방법과 과학자들이 보여주는 바 비판적 사고에의 개방성이다. 개방사회에 대한 포퍼의 생각은 종교적인 신비성에 바탕을 두기보다는 현세적인 자유주의적 체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에 비해 베르그송은 수직적 개방성 ( vertical openness )을 강조하는데, 이는 존재의 근원을 향한 인간 혼의 개방성이다. 달리 말하면, 베르그송의 그것은 신 중심적인 휴머니즘의 체험을 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베르그송에게서는 플라톤과 히브리 예언자나 기독교의 신비주의자들이 영웅으로 등장하나, 포퍼에게서는 오히려 플라톤이 개방사회의 적이며 주술에 바탕을 둔 몽매주의적 신화화를 도모하는 폐쇄사회의 대변자인 것이다. 나아가서 이 두 사람은 모두 올바르게 이해된 민주주의는 개방 사회 이념의 진정한 현대적 표현일 뿐만 아니라 그 대단원을 이 룬다고 생각하나, 민주주의의 의미에 대해서는 상이한 견해를 갖고 있다. 포퍼는 보다 개인주의적 입장을 가지나, 베르그송은 루소와 마찬가지로 자유와 평등을 매개하는 것으로서 박애를 강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나타나는 중대한 차이로서 베르그 송은 개방사회가 전 인류를 포괄한다고 말하는 데 비해 , 포퍼는 개방사회가 여럿 있을 수 있으며 이들은 다른 개방사회나 폐쇄사 회와 경쟁관계나 전쟁 상태에 있을 수 있다고 보았다. 베르그송 에 있어서 개방사회의 성취는 전쟁의 소멸과 새로운 형태의 세계 공동체의 형성을 뜻한다. 그러나 포퍼는 그러한 발전에까지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자칫하면 자신의 이론이 냉전 체제의 이데올로기적 투쟁을 위한 무기가 될 위험을 남기고 있다. 포퍼의 개방사회론에 따르면 닫힌 사회는 마술이나 주술이 지 배하는 부족사회 혹은 집단적 사회를 의미하며, 열린 사회는 개 개인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 회를 말한다.

 

닫힌 사회는 함께 살며 공동의 노력과 공동의 위 협, 공동의 기쁨과 공동의 고통을 나누는 혈족관계에 의해 예속되며 거의 유기체적 단위로 존재하는 집단이나 부족과 비슷하다. 이에 비해 열린 사회의 성원들은 노동의 분업이나 상품의 교환과 같은 추상적인 사회관계에 의해 서로 관련을 맺고 있으며, 대다 수의 구성원들이 사회적 상승을 위해, 그리고 타인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계급투쟁과 같은 중대 한 사회적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닫힌 사회에서는 구성원들 간에 지위 다툼이 있을 수 없으며 계급제를 포함해서 닫힌 사회의 제도는 신성불가침의 금기인 데 비해 열린 사회는 유기적인 특성 이 없음으로 해서 점차 추상적 사회 ( abstract society )로 발전해 가게 된다.

 

포퍼에 따르면 현대의 열린 사회에서 사회집단들이 갖는 비인간적인 추상적 성격으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익명과 고립 속에서 살게 되며, 결과적으로 불행한 상태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다. 사회는 비록 추상화되었지만 인간의 생물학적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은 고로 추상적 사회에서는 만족할 수 없는 사회적 욕 구를 갖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포퍼에 의하면 이러한 상태는 보다 값진 이득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할 불가피한 대가라는 것이다. 혈연, 지연 등 우연적 변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새로운 인간관계가 나타나게 되며, 생물학적인 육체적 결속 대신 정신적인 새로운 유대가 주된 역할 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닫힌 사회가 붕괴되고 우리의 욕구를 억제하고 합리적으로 되고자 하며 자신이 선택하고 스스로 책임지고자 하는 노력으로부터 문명은 일종의 긴장 상태 ( strain of civilization )를 감수하게 되며, 이러한 긴장은 추상적 사회에서 지식과 합리성이 증대함과 더불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생존 기회가 증대되며, 우리는 보다 인 간답게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닫힌 사회로부터 열린 사회에로의 이행은 인류가 거쳐온 가장 위대한 혁명이라는 것이다. 희랍인들은 초보적인 단 계이기는 하나 그러한 혁명을 시작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일부 철인들은 이성, 자유, 인류애에 대한 새로운 신념에 눈을 떴으며, 이는 우리가 기대를 걸 만한 유일한 신념인 열린 사회에 대한 신념이라고 한다. 포퍼는 철학의 등장이 닫힌 사회의 멸망을 의미한다고 본다.

 

철학은 마술적 신념을 합리적 신 넘으로 바꿔놓으며, 또한 철학은 통념과 신화에 도전하여 그것들을 비판적으로 논의하는 새로운 전통을 확립함으로써 권위주의적이고 보수주의적인 전통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포퍼의 개방사회론은 자유로운 논의와 합리적인 비관을 통해 사회를 점진적으로 개혁, 개선해 가고자 하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를 토대로 한 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두 가지 갈림길에 처해 있는데, 하나는 원 시적인 부족주의나 집단주의로 다시 돌아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개방사회로 과감히 전진하는 길이다. 앞의 길은 결국 인간을 야만화, 야수화로 몰고 가는 길인 데 비해, 뒤의 길은 모든 인간을 진정으로 인간적 삶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단 우리가 자신의 이성에 의존하기 시작하고 우리의 비판 능력을 활용하기 시작한 이상, 개인이 선택하고 자신의 선택에 스스로 책임질 수 있게 된 이상, 우리는 부족적 마술의 길로 돌아갈 수는 없다. 지식의 열매를 맛본 자는 이미 천국을 잃어버렸 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족주의의 주술적 시대로 돌아가고자 하면 할수록 우리는 종교 재관, 비밀경찰, 깡패의 폭력에로 나아가게 된다. 이성과 진리를 억압할 경우 우리는 인간적인 모든 것을 가장 야만적이고 포악한 파괴에 맡기게 된다. 우리는 다시 자연의 조화된 상태로 되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야수로 되돌 아갈 수는 없으며 "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의 길 즉, 열린 사회에로의 길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성을 사용하여 안전과 자유를 위해 계획하면서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미지의 세계에로 공동의 탐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고 포퍼는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