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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윤리

노직의 비정형적, 과정적 정의관(3)

by urusai 2025. 1. 12.

분배적 정의가 적용되는 제한된 상황과 전체로서의 사회, 즉 무제한한 자발적인 사회 간의 유비는, 노직에 따르면 두 가지 이유에서 그릇된 것이다. 그중 하나는, 전체 사회의 경우에 있어서 는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계당국 이 분배될 재화에 대해 소유권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직의 주장에 의하면 제 자원은 일부 사람들이나 집단이 마음대로 분배할 권한을 갖게 될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 ( manna from heaven )가 아니다.

 

자원들은 정의롭건 부정의하건간에 이미 과거에 일어 난 많은 개인들의 거래 활동을 통해 분배되어 있는 것이다. 분배 혹은 재분배에 문제가 있다는 가정은 정형적 정의론의 근본적인 오류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정형적 정의론에 대한 노직의 첫 번째 반론은, ( 사회정의에 대한 그들의 관심이 제한된 통제 상황의 정의로운 분배와 무제한한 자 발적 상황의 정의로운 분배 간의 그릇된 유비추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정형적 정의론에 대한 노직의 두 번째 반론은 이 미 앞에서도 부분적으로 지적된 바와 같이 정형적 정의론이 자유와 양립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노직의 소유권적 이론과 관련된 다음 네 가지 조건을 가진 사회를 상상해 봄으로써 쉽사 리 이해될 수 있다.

 

널리 알려진 분배적 정의의 정형들 중 하나가 전 사회에 걸쳐 성공적으로 실현되었다고 해보자. 시민들은 그들이 선택한 대로 자유로이 자신의 소유물을 교환하고 양도할 수 있다고 해보자. 다른 사람의 소유를 절도, 강탈, 사기, 혹은 다른 범법행위에 의해 탈취하는 것은 법에 의해 금지 된다고 가정하자. 끝으로 불필요한 반론을 배제하기 위해 이 사회에 생산과 교환의 능력이 없는 사람은 부재한다고 해보자. 이상 네 가지 조건이 충족된 사회에서는 소유물의 자발적인 양도나 교환을 정의롭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만일 우리가 최 초의 상황에서 모든 사람의 원초적 소유가 정의로운 분배 정형에 부합하는 까닭에 정의롭고 그 이후의 교환, 양도도 정의롭다고 가정할 경우 원초적 소유 형태로부터의 어떤 이탈도 그 정도에 상관없이 정의롭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유로운 사회라면 분 배의 최초 상태로부터 쉽사리 새로운 소유 형태로 바뀌게 될 것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원초적 정형을 옹호하는 자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선택지 중 한 가지 입장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일부 정형론자들은 이러한 이탈이 자유롭고 합법적이며 정의로운 교환의 결과인 까닭에 그 결과가 애초에 규정된 정형과 다르다 할지라도 그 상황이 정의롭다고 판정할지도 모른다, 그러 나 대부분의 정형론자들은 어느 기간이 지나면 그 분배 상태가 부정의하다고 관정하고 국가가 개입하여 그런 상황을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가의 재분배를 요청하는 둘째 방도를 택할 것이다.

 

그러나 미리 규정된 정형을 다시 회복한다 해도 자유로운 교환은 정형을 교란하고 그로부터의 이탈을 결과한다. 따라서 국가는 반복해서 간섭하게 되며 재분배 시에는 공정하고 정직하게 취득한 소유물도 정의의 명분으로 헌납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국가가 이러한 방식의 주기적인 재분배를 하는 일조차 불편하 다고 판정하는 어떤 정형론자들에게는 세 번째 방식이 가능하다. 이는 시민들로 하여금 자신의 소유물을 마음대로 양도 교환할 자 유를 박탈하고 시민들의 일상사에 일일이 개입하여 모든 행위를 통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서 결국 최종결과적, 정형 적 정의원리는 사람들의 생활에 부단한 간섭없이는 지속적으로 실현될 수 없다고 노직은 경고한다.

 

바람직한 정형은 사람들의 자유롭고 다양한 선택 행위로 인해 바람직하지 못한 유형으로 조 만간 변형되기 마련인 까닭에 정형적 정의론자에 따르면 결국 사회정의는 통제사회에서만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점에 서 하이에크 ( Friedrich Hayek )는 정의란 " 전체주의가 세계의 여러 사회에 진입해 들어오기 위해 타게 되는 목마"라고 빈정거 렸던 것이다. 이상에서 논의해 온 노직의 비정형적, 과정적 정의론은 론 전개와 치밀한 논리분석으로 인해 쉽사리 비판의 여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정적 정의론이 그 자체로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더라도 과정에 앞서 혹은 과정중에 개입되는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가정들로 인해 결과적 정의론과의 구별이 애매하게 될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특정한 실질적 기준을 내세우는 정형적 정의론의 대안으로서 과정적 정의론의 강점은 그 과정이 어떤 특정한 실질적 기준에 대해서도 가치 중립성을 보장한다는 과정의 순수성에 있다 할 것이나, 과정에 개입하는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가정들이 그 속에 함축된 실질적 내용들을 과정 속에 끌어들일 경우 과정의 가치 중립성 혹은 순수성은 견지되기 어려운 일이다.

 

과정 자체의 순수성과 관련된 논의는 다음 절에서 더욱 상론하기로 하고 우선 여기서는 노직의 소유권적 정의론과 관련된 몇 가지 논점을 비판적으로 고 찰해 보고자 한다. 이미 서두에서 우리는 정의의 객관적 여건으로서 재화의 적절 한 부족 상태를 논의한 바 있다. 현실에 있어서는 재화나 자원이 부족하기 마련이며 이러한 자원의 부족 상태는 노직의 입장에 불 리한 여건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어떤 것을 소유할 경우 그것 은 거의 언제나 타인의 소유 기회를 감소시키게 되며 그만큼 타 인에게 가용한 자원과 재화가 줄어들게 된다. 이 문제에 있어 해 결의 관건은 노직이 원초적 취득의 정당화 단서를 " 타인의 처지 를 악화시키지 않는 한"이라는 점에 두는 것과 관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