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는 마르크스가 개방사회의 적이라는 누명을 벗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적어도 두 가지 면에서 열려 있다는 점을 논구해 왔다. 그중 하나는 그의 이론에 있어 개방사회에로의 장애로서 개체론의 반정립으로 이해되어 온 전체론적인 혹은 집단론적인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또 하나의 장애로서 역사주의적 오류로 이해되어 온 결정론적인 혹은 숙명론적인 측면이다. 우리의 논변 은 적어도 그의 집단론이 개체론의 반정립으로 이해되지 않을 경. 우, 집단적 책임은 개인적 자유와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적 자유를 확장하고 보완하는 것일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우리의 논변에 따라면 마르크스가 말한 법칙이 초기 조건을 고려한 경향으로서의 법칙관을 통해 이해될 경우, 나아가 이러한 초기 조건에 의식을 가진 주체로서 인간이라는 변수가 고려될 경 우 그의 결정론은 자유론과 양립 가능한 것이며 결코 강한 결정 론으로서의 숙명론이 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논변이 다소간의 이론적인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지라도 마르크스의 이론에는 언제나 개체론과 집단론, 자유론과 결정론 간의 긴장이 상존하고 있으며, 강조의 비중이 집단론이 나 결정론으로 기울어 개인보다는 집단을, 자유보다는 필연을 강 조할 소지가 내재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의 이론이 개인주의나 자유주의의 허상을 폭로하는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 있을 경우 이러한 내적 소지는 현실적으로 표출되는 경향을 갖게 마련인 것이다. 더욱이 집단론과 결정론으로 기울고 있는 성향은 소 위 마르크스가 제시한 개방사회의 모형으로서 공산주의 사회에로의 이행을 위한 전략에 있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포퍼의 점진적 ( piecemeal )인 사회공학으로서의 개혁론에 대비되는 마르크스의 전체론적 ( holistic ) 사회공학으로서의 혁명론에서 우리는 공산사회에로의 이행이 필연의 추세라는 확신과 더불어 지극히 집단론적인 발상을 감지하게 된다.
사회 변혁을 위한 폭력혁명을 강조하고 정책 결정의 절차로서의 의회주의를 불신할 경우, 그는 개방사회로부터 거리를 취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바로 이 점은 마르크스의 인식론적인 섹대주의를 배경으로 해서만 온전 히 규명될 수 있는 것으로서 이는 개방사회의 동지로서 출발한 그가 개방사회의 적으로 변신하게 되는 이론적 관건이 달린 중대 한 논제인 것이다. 포퍼가 마르크스 해석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 중의 하나도 마르크스 이론에 있어 초기의 인간주의적 요소가 결국 폐쇄사 회의 대변자로 전환할 수밖에 없도록 한 사회적 논리를 분명히 천명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포퍼는 마르크스가 개방사회의 직접적인 적이라고 비난하지는 않는 다. 마르크스의 도덕이론을 평가하면서 그는 " 마르크스의 신념이 기본적으로 개방사회에 대한 신념"이라고 말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의 잔인성을 폭로하고 그것을 시정하고 자 했다. 자유주의 옹호론자들을 공격한 이유는 그들이 당시 자유를 유린하던 사회체제에 존재하는 형식적 자유를 진정한 자유로 착각하고 자기만족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이 함축하는 바에 따르면 마르크스가 자신이 자유를 사랑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셈이며 그가 집단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한데, 왜냐하면 그는 국가가 소멸하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퍼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간접적으로 개방사회의 거대한 적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당대의 민주주의적 자유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적 평가로 인해 그는 사회와 과학에 대한 그릇된 이론을 전개하게 되었으며, 수많은 지식인을 오도해서 그들을 개방사 회의 공공연한 적으로 전환시켰다는 것이다. 포퍼에 따르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입헌 민주제의 정당성이 개방 사회의 가치를 진정으로 대변하는 것임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러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저술마다 노동 자에게 정치적 참여를 거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것을 인정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인정은 엄청나게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으며, 그 자체가 독단적 이데올로기의 형태로 세력을 이룸으로써 사회주의적 운동이 선거절차나 의회과정에의 참여와 같은 민주주의적 행태의 유형을 발전시켜 정치적 참여가 노동자들에게 인정된 이후에까지도 그러한 태도가 견지되고 있다. 입헌 민주제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그러한 불신으로 인해 일 편의 제도, 절차, 행동원리로써의 민주주의는 중대하게 다루어지 지 않고 있다. 그러한 민주주의는 부당한 것으로 반복해서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이러한 접근 방식으로 인해 마르크스주의는 현대의 전체주의 출현에 두 가지 방식으로 기여한 셈이다. 우 선 입헌 민주제를 소중하게 다루지 않음으로써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처음부터 개방사회의 도덕적 전제에 동조하지 않았던 파시스트들 이 정치적 세력으로 등장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또한 그들은 19세기 초반의 그릇된,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관행을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민주주의를 비판하면서 내세웠던 개방사회의 이상과도 거리가 먼 이념을 발전시키게 된 것이다. 진정한 개방사회인 공산주의가 최종적으로 승리하리라는 것을 결정론적으로 믿음으로써 마르크스 추종자들은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야 만 것이다. 그들은 그 아래서 그들 스스로 번성할 수 있었던 민주주의적 절차를, 개방사회의 존재를 위한 최소한의 조 건으로서 옹호하지 않았으며 폐쇄사회의 침투로부터 자신의 진영을 지키기 위한 그들 자신의 조직 내에서까지도 이러한 개방적 절차를 극대화하려 들지 않았다. 자유 민주주의의 정당성에 대한 불신의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그들은 결국 개방사회의 적으로 변 신해 갔던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개방사회의 옹호자가 그에 대해 등을 돌릴 가능성은 마르크스나 그 추종자들뿐만 아니라 포퍼를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자들에게도 상존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포퍼의 비판 중 가장 중심적인 것의 하나는 필연의 법칙을 추구하는 역사주의에 근거한 것으로서 마르크스주의는 사회공학 ( social engineering )에 적대적인 것이며, 따라서 현실에 적용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포퍼에 따르면 " 마르크스가 「 자본론 」 속에 설정한 과제는 사회 발전의 철칙 ( inexorable laws )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사회공학자에게 유용한 경제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같이 포퍼는 사회 발 전의 법칙을 확립하는 과학의 가능성을 부인했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직접적인 개선을 내세웠고, 그를 위한 점진적 공학 ( piecemeal engineering )과 민주주의적 개입을 추구했다. 그래서 포퍼는 " 마르크스주의자가 이런 종류의 개입이 불가능하다고 내세우는 것은 당연한데, 그 이유는 역사란 세계의 개선을 위한 합리적 계획에 따라 형성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가 사회공학을 부정한다는 포퍼의 입론이 함축하는 바는 마르크스주의가 자본주의 국가의 민주주의적 발전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포퍼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정책은 노동자들이 민주주의를 불신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특징 지울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민주주의관에 대한 포퍼의 해석에 논란의 여지 가 없는 바는 아니나, 여기에서 우리는 폐쇄사회로부터 개방사회로 나아가는 사회의 이행이 단지 점진적 공학을 통한 진화론적 방법에 의해 성취될 수 있다는 포퍼의 이행이론에 주목해서 그 의 개방사회론의 허실을 논할 필요가 있다. 사회 발전에 관한 진화론자 ( 개혁론자 )와 혁명론 자간의 논쟁은 오래 고도 심각한 역사를 갖는다.
사실상 혁명을 개인적으로 원하 거나 그것을 진화보다 더 선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철학자들조차도 사회의 발전이 불 필요하고 과도한 희생 없이 점진적이고 온건하게 진행되기를 바 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이러한 우리의 소망과 언제나 일치했 던 것은 아니라는 점에 문제가 있다. 과거의 역사에서 위대한 발전은 대체로 과격한 방식으로 성취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역사를 되돌아볼 때 지배계층이 자발적으로 피지배계층의 처지를 개선해 주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 적이 없다. 심지어 비교적 사소한 변화나 개혁조차도 상당한 위협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19 세기 후반 자본주의의 사회적 개혁의 역사에 대해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포퍼는 자본주의의 사회 개혁을 찬양하면서 혁명적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개혁이 어떤 과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인지 그 원인에 관한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한 개혁 이 더 일찍 일어날 수 없었던 원인은 무엇이며, 오늘날 자본주의 적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리의 신장과 사회 개혁을 위해 그렇게 격렬하고 과격한 투쟁이 요구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2 차 세계 대전 이후의 수많은 복지국가의 탄생 과정을 관찰해 볼 때 점진 적 사회공학이 혁명적 요인들에 의해 매개되고 있다는 느낌을 금 할 수 없는 것이다. 개방사회의 이념을 처음으로 구현해 보고자 했던 시도는 아테 네의 민주주의였다. 그러나 2천여 년간의 오랜 퇴행의 시기를 거 쳐 개방사회를 창출하고자 재현된 또 하나의 시도가 바로 근세의 시민혁명이었다.
이런 역사적 사건은 점진적이고 온건한 개혁이기에는 너무나 과격하게 진행된 것이다. 포퍼가 옹호하고자 한 민주주의 그 자체도 바로 그가 내세우는 방식과는 다르게 성취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는 과격한 변혁을 통해 이루어진 것일 뿐만 아니라 사회를 재편성하고자 하는 대중 적 운동의 소산으로 나타났다. 점진적인 공학이 아니라 전반적 공학을 꿈꾸는 의지의 매개가 없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역사 적 산물이었다. 결국 우리는 인간의 삶의 조건을 개선해 간다는 의미에서 사회 적 발전을 진정으로 의도할 경우 혁명론이나 과격한 변혁론을 경시할 수 없다는 역설적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근본적 변혁이론이 엄청난 위험 부담을 갖는다는 포퍼의 견해를 무시할 수는 없다.
전반적 변혁론자들에게 있어서는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 설정된 목표가 그것을 위해 인간이 봉사하게 되는 목표로 쉽사리 전도되어 버린다. 어떤 이념의 열렬한 추종자들은 서슴지 않고 불과 칼로써 새로운 신념을 퍼뜨리고자 하며, 이는 기독교도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때문에 신념 그 자체까지 무가치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 또한 중 요하다. 이쯤 해서 우리는 개방사회의 친구가 적으로 변신하는 문제를 미제로 남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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