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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윤리

개인적 자유와 집단적 책임

by urusai 2025. 1. 12.

포퍼의 견해에 따르면, 개방사회의 본질적 특성은 그 개인들이 개인적 책임을 지며 개인적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이는 개방사회를 정의하는 데 충분조건이 된다. 따라서 어떤 사회가 개인적 책임과 의사 결정에 있어 충분한 여지 를 허용할 경우 그 사회는 개방된 것이다. 바로 이 점과 관련하 여 마르크스에 대한 포퍼의 반론은 아주 강한 것으로 보인다. 포퍼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개인으로부터 개인적 책임을 탈취하고 개 인에게 의사 결정의 여지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종족사회에 존재했던 집단적 터부, 법, 규범과 유사한 전제를 시 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포퍼와 같이 책임과 결정의 여지를 허용하는 사회가 개방사회라는 입장을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마르크스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가 제시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가 개방되는 데 반대하기는커녕 마르크스는 사회가 개방되면 될수록 더 좋다는 점에 대해 포퍼에게 동의하리라고 본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자본주의 옹호자들은 사회가 개방적이기를 바라는 데 독점 권을 갖지 않으며, 사회를 개방적인 것으로 만드는 방도에 있어 전유권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생활방식 속에 개인의 의사 결정 영역이 그 책임과 더불어 점차 확대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노동자의 경우에 이 영역이 얼마나 확대되어 왔는지는 과거의 농 노와 현재의 노동자의 조건을 비교해서도 쉽사리 평가될 수 있다. 농노는 어떤 개인적 의사 결정도 할 수 없고 따라서 책임도 질 수 없는 데 비해, 현대의 임금노동자는 직업선택에서 뿐만 아 니라 선거의 투표 등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개인적 의사 결정의 영역을 가질 뿐 아니라 그에 따른 상당한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다. 마르크스가 노동자로부터 그들이 지금까지 획득한 개 인적 책임과 의사 결정의 자유를 박탈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그 들에게 그러한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싸워온 투사요, 그런 의미에서 개방사회의 최대의 대변자로 자처하는 마르크스에 있어서 엄청 난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개방사회에 있어 개인적 의사 결정의 자유와 개 인적 책임이 더없이 중요하다는 점에 동조하면서도 개인이 스스로 책임을 지고 개인적 의사 결정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개인적 책임과 개인적 의사 결정의 중요 한 영역을 확인함과 동시에 그것이 집단적 책임과 집단적 의사 결정의 영역에 의해 수정, 보완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 까닭은 개인은 삶의 수단을 사회적으로 생산하는 체제 속에서 살고 있고 또한 그러한 체제 속에서만 살 수 있을 뿐인 까닭에 이와 관련해 서 집단적 책임이 행사되어야 할 영역을 규정하고자 했다. 그러나 포퍼는 바로 이 점을 종족주의에로 복귀하는 길이라 했다.

 

그에 따르면 개인적 책임과 집단적 책임은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서 그 양자를 반정립이라고 본다. 따라서 집단적 책임을 요구한 다는 것은 결국 개인적 자유의 종말이요 전체주의적인 개인의 비 자유로 보았으며, 개인적 의사 결정 속에 내재하는 합리적 반성과 합리성의 종언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물론 개인적 책임을 없애고 집단 감정에 내맡길 경우, 그것은 폭도들의 경우와 같이 합리적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의미에서 집 단적 책임이 아니라 집단적 무책임을 결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말하는 집단적 책임은 사람들이 민주적 조직으로 통합될 경우, 오직 그 경우에만 성립한다. 그 경우 그들은 그 조직체로 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합리적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

 

분명히 민주적 조직을 통해 행사되는 집단적 책임은 개인적 책임과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조직적으로 통합된 개인들에 의해 책임이 행사됨으로써 집단적 책임은 합리적 반성의 가능성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증진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역이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며, 따라서 책임의 공동화 ( 空洞化 ) 현상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포퍼는 책임과 의사 결정을 전적으로 개인적 문제로 간주하며, 따라서 공공사에서 권력이나 지위를 가진 자가 의사를 결정하고, 그 결정에 대해 책임진다. 그리고 다른 이는 민주제도를 통해 투 표함으로써 새 입법과 제도적 변화의 방향을 통제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개방된 사회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사회 적 생산관계에 의해 생겨나는 제 결과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이다. 현행 우리의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에 있어 개인들의 수많은 합리적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나 그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 도 책임질 수도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생산관계와 관련된 개탄할 만한 무책임의 상황을 수정하는 방식과 수단에 관심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사회 적 생산관계가 집단적으로 결정되고 집단적으로 통제되는 조직 속에서만이 공동의 사회적 자원이 성원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이에게 과 거보다 개인적 활동의 보다 큰 기회와 선택을 제공하며 개인적 의사 결정에 보다 큰 자유와 책임을 보장하는 개방사회의 전제라 는 것이다. 제도와 관련해서 말한다면 포퍼는 제도란 인간이 만든 것인 까 닭에 그것을 만드는 의사 결정과 개조되는 방식에 대한 의사 결 정이 인간의 책임 아래 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정도에 비례해서 사회의 개방성이 평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방사회와 폐쇄사회를 구분하고 폐쇄사회로서 종족사회에 대비해서 개방사 회로서 자본주의 사회를 논의할 때도 포퍼의 그러한 입론이 일관 성 있게 견지될 는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종족주의나 원시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에로 사회 형태가 발전해 오는 과정을 두루 해서 생산관계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제도에 대한 무책임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을 포퍼가 간 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종족사회에서 터부나 관습도 인간이 만든 것이었으나 아무도 그것을 만들고 개조하는 데 책임지려고 하지 않았기에 종족인들 은 그것을 인간 삶에서 불변적이고 불가피한 조건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 스스로 만든 규칙 속에 폐쇄되었고 ( closed ), 이들 규칙이 그들의 성격, 인간관계, 행위양식을 규정하는 항구 적인 힘으로서 행세했다. 생산력의 발전으로 인해 종족사회가 붕괴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착취와 계급 분화를 동반하는 재산의 규칙을 만들었고, 다시 그러한 규칙체계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으며, 인간은 또다시 그 속에 폐쇄된 것이다.

 

마르크스 주의자들은 종족사회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이 인간 스스로 가 만든 규칙체계에 예속되고 폐쇄되어 그것이 다시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고 개조될 수 있다는 자각과 의식적인 책임 인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폐쇄성의 구조를 발견한다. 사회적 자원을 가장 합리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끔 사회적 제 관계를 인수, 행사할 합리적 책임이 모든 인간들에게 개방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집단적으로 그것을 수용할 수 있게끔 조직되기 전까지는 제대로 개방될 수 없는 것이기 도 하다는 것이다.

 

사회구조를 만들고 변경하는 데 의사 결정과 책임의 범위를 확 대한다고 말할 경우 이는 결국 제 제도, 특히 생산수단의 기본 제도에 대해 합리적 책임이 조직됨으로써 그들에 대한 합리적 의 사 결정이 이루어지고 수행되게끔 하는 방도의 문제에로 귀착된 다. 자본주의 사회가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관계를 대규모로 증진시키고 그를 추구하는 개인의 책임을 중대시 킨 것은 사실이나,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사회적 생산의 기본 과제를 수행하게끔 합리적 책임이 인수, 행사되는 조직이 없다는 점에서 폐쇄성이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가 성취한 것 중의 하나는 그가 폐쇄사회의 조건들과 그 역사적 전개에 대해 포퍼를 위시한 어떤 자유주의자도 비견할 수 없게끔 보다 철저하게 분석 적 탐구를 수행한 점이라고 마르크스주의자는 평가한다. 그는 인간이 언제나 자기 스스로 만든 그물망에 폐쇄되어 왔으며 지금도 폐쇄되어 있는 방식을 보여주고, 드디어 그들 스스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고 있음을 전망한 자라는 것이다.